2012년 11월 27일 화요일

<에브리맨>, 우린 모두 늙거나 혹은 죽는다.









<에브리맨> 필립 로스 저, 정영목 역
문학동네, 2009.10.15
페이지 192, 판형  A5, 148*210mm, 가격 9,500원





여기, 사람들이 앉아 서로 토해내는 신음을 듣는 곳,
중풍환자가 몇 가닥 남지 않은 마지막 을씨년스런 머리카락을 흔드는 곳,
젊은이가 창백해지고 유령처럼 마르다가 이내 죽는 곳,
무슨 생각만 해도 곧 그득한 슬픔이 밀려오는 곳…. 

존키츠, <나이팅게일>
(이 책의 서문)


모든 인간에게 평등한 생로병사에 대한 고찰

이야기는 한 남자의 장례식에서 시작한다.
친지 몇만 조촐히 모인 장례식 후 그의 지나온 삶이 펼쳐진다.
아니, 펼쳐진다고 표현하기엔 이 소설의 이야기나 문체는 담담하다.
작가는 화려한 표현이나 미문 대신 묵직하면서도 조용한 필치로 한 남자의 삶을 그려 보이는데, 오히려 그 덕분에 이 이야기에 날카로운 매력이 더해진다.

지나치는듯한 한마디에 세상의 이치를 깨우친 노사老師의 지혜가 엿보이는 식이랄까.
그렇다고 의미심장한 표현이나 현학적인 비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까지나 담담하게, 물 흐르듯이 전개되면서도 그 안에서 종종 가슴에 무겁게 내리 꽂히는 부분들이 이 소설의 백미이며, 그것이 필립 로스가 어째서 대작가의 반열에 들었는지를 보여주는 듯 하다.
생자필멸의 굴레, 그 슬픔과 아쉬움의 뒤범벅을 대하는 작가의 자세는 작품을 관통하듯 아버지에게서 딸로 대물림되는 다음 대사에 드러나 있다.
현실을 다시 만들 수는 없어요. 그냥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여차 저차 살다 어찌 저찌 죽다.

저자는 담담한 필치로 '그'의 삶을 재구성하며 보여준다.
 ‘는 보석상의 둘 째 아들로 태어났다. 미술을 좋아해 화가를 꿈꿨지만 생활을 위해 광고회사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성공한다.

는 세 번의 결혼을 했고 세 번 실패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한 첫 번째 결혼에선 두 아들 외엔 서로에게 상처만 남겼다. 두 번째 결혼은 같은 회사의 부하직원이던 피비였다. 천사 같은 딸 낸시를 얻지만 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었던 열정과 욕망에 따른 외도 때문에 두 번째 결혼도 실패로 끝나고 만다. 세 번째는 외도상대였던 젊은 모델이었고, 결혼 후에 큰 일을 겪게 되면서 그는 그가 실수했음을 알게 된다.

에게 처음 찾아온 죽음에 대한 이미지는 두려움이었다. 2차대전 때 유보트의 공격으로 난파된 배에서 나온 선원의 시체가 해안으로 떠밀려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병실에 누워 죽어가는 옆 침대의 소년을 보며 그는 그 두려움을 생각했다. 바닥까지 보일 정도로 투명하던 바다가 난파된 배의 기름에 뒤덮여 밑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그곳에 선원의 시체가 떠밀려 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다
그에게 죽음이란 밑이 보이지 않는 바닷물, 그리고 그 속에 잠긴 소름 끼치는 시체의 이미지였던 것이다. 이후 그가 수영을, 특히 바다수영을 즐긴 것은 그런 두려운 죽음의 이미지에 맞서기 위한 노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객관적으로 보아 '그'의 삶은 남 부러울 것이 없다. 유대인 보석상의 아들로, 미국에서의 주류 백인으로, 광고계에서의 성공적인 경력으로, (20살 이상 어린 늘씬한 모델과의 관능적 사랑을 포함한) 세 번의 결혼으로. 메디케어를 받고 있으며 부유한 은퇴자 마을에 입주하여 어릴때의 꿈인 그림을 그리며 그림교실도 열었다. 이 정도면 제3세계는 고사하고 같은 미국의 보통사람이 보기에도 꽤 성공한 인생 아닌가.
하지만 이 소설의 서술을 따라 보고 있자면 그의 삶에는 늘 회한과 서늘함이 감돈다. 특별한 고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가 설명하는 의 이야기는 유년시절에서 그의 결혼생활로, 그리고 그의 노년생활로 이어진다. 이야기의 흐름은 연대기적이 아니고 과거의 이 시점과 저 시점을 오락가락 하는데, 중요하게 서술되는 부분은 그의 실패한 가정생활과 그의 건강문제이다. 유년시절 탈장 수술을 받은 뒤로 청년기 이후에 성의 욕망에 충실했던 그는 장년 이후 건강 문제로 7년 연속 병원 신세를 진다

이렇게 이 책에서 말하는 그의 인생에 인생의 건강했던 때와 성공적인 직장생활에 대한 부분은 최소한도만 표현되고 스쳐 지나가듯 설명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설득력을 가지는 것은 이 소설의 서사가 (3인칭의 객관적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고인이 무덤에서 지난 날을 회고하는 듯한 분위기이기 때문일 터이다
 그는 건강히 썩 좋은 편은 아니었고, 생애 동안 저 죽음이 밀려오는바다에 맞서 파도를 헤치며 헤엄을 쳐댔지만 그 두려움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게 되는 순간은 개체화가 이루어지는, 숭고한 단독성이 확립되는 강렬한 느낌을 받는, 그리고 죽음과 다름 없는 비인격화의 정반대되는(본 책 p139) 신성한 성적 만남을 가질 때였다. 그가 세 번의 결혼과 두 번의 불륜을 저지를 것도 어쩌면 수영과 마찬가지로 무의식 중에 죽음에 반대되는 어떤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었을까?

루페와 다이아몬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시간의 흐름과 함께 모두 죽음에 도달하거나 가까워진다. ‘’, ‘의 부모, 직장동료, 전처, 은퇴자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다
 그의 삶의 막바지에 그는 심하게 고독하다. 딸과 함께 살 계획은 그의 결혼생활 중 유일하게 사랑했던 전처 피비의 중병으로 인해 좌절되었다. 건강한 형에 대한 질투로 그렇게 서로 아끼던 형과도 소원해졌다. 젊을 때의 성적 매력도 없다. 그가 마음을 둔 안 은퇴자의 부인은 지독한 허리통증에 수면제로 자살했다. 그의 첫 처와 그 아들들은 그를 원수로 여긴다. 은퇴한 직장동료들도 죽거나 죽어간다
 그 고독 속에서, 단독자로서의 그는 죽음을 더 이해하고자 한다. 그는 끝까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지 못했지만, 결국 죽음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진 후에 죽는다.

 결국 이 소설은 의 삶을 조용히 되돌아봄으로써 모든 사람 everyman’에 대해 찾아올 수 밖에 없는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죽음 앞에서 우리는 모두 보통 사람 everyman’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사람은 날 때부터 유한한 존재이다. 어떤 삶을 살았든 죽음은 찾아오고, 그 운명 앞에 우리는 저마다 단독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내가 보기에 어느 정도 불교적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일생을 통해 어떤 영원성을 추구할 것이다. 무언가는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 무의식 중에 영원을 추구하는 행위일지도 모르는 번식욕구 등.
 ‘의 아버지가 경영하는 보석상의 이름은 ‘Everyman’이었다. 이 경우엔 보통 사람’. ‘엘리자베스라는 항구도시의 주머니사정이 넉넉지 않은 노동자들에게 다이아몬드와 시계를 팔았다. 가게의 이름, 그리고 취급품목에서 나는 이 부분이 작가의 거대한 메타포라고 생각했다.
보통사람을 상대로 파는 영원성의 상징 다이아몬드, 시계, 아버지가 항상 지니다가 무덤까지 같이 들어간 루페. 사람들은 어떤 영원성을 추구하며, 가족 또는 사랑하는 이를 위한 영원성을 바라며 다이아반지를 산다. 하지만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며, 시간이 흐르면 그 보통사람들도 모두 죽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루페를 통해 다이아를 바라보는 보석상처럼, 생애동안 아주 작은 관을 통해 어떤 영원성을 추구하다가 죽어버리는건지도 모른다. 그게 누구라도. 누구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다. 그냥 서서 받아들이는 것. 그 자세. 어쩌면 그것만이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영원성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을 보는 내내 나와 우리 가족을 생각했다. 별(別)세계를 배경으로 별세계의 이여기가 펼쳐지는데도, 몰입시키는 것이 보편적인 좋은 소설의 힘이자 이 소설의 힘일 것이다. 생과 사에 대한 무거운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작품 내내 주인공의 이름을 등장시키지 않고 라고 지칭한 필립 로스가 의도한 바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소설을 읽고 커트 보네거트의 한마디가 생각났다. 
"그렇게 가는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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