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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장 해치웠다-!”
어제도 잠들기 전 이불 안에 파묻혀 진삼국무쌍6를
psp로 플레이 했다. 삼국지연의를 기반으로 모던하게 재해석된
복장과 외모의 수 많은 삼국시대의 장수들을 컨트롤해 전장을 누비며 적들을 자살刺殺, 창살創殺,박살撲殺하는 재미는
중독적이다.
사실 게임의 장르 구분을 제외하면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의 코에이社가 발매한 시뮬레이션 게임인 삼국지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이 89년 발매되어 얼마 후 한국에서 불법으로 (디스켓 to 디스켓의 꽃피는 우정) 유통되며 큰 히트를 쳤으니 삼국지 게임이
소년들의 잠 못 이루는 밤에 큰 기여를 해 온 것도 물경 20년이다.
요즘은 국산 MMO RPG나 웹게임에도 삼국지는 훌륭한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비단 게임 뿐일까. 삼국지연의의 일부를 바탕으로 한 중국 영화가
흥행몰이를 하고, 중국에서 만든 삼국지 드라마 역시 케이블 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중이다. 동아시아3국에서 삼국지는 크로스-오버의 날개를 달고 바야흐로 끝나지 않는 전성시대를 누리는
중이라고 봐도 될 듯하다.
요시카와 에이지 부터 장정일까지
이문열, 정비석, 황석영, 장정일… 20세기 이후 삼국지에 ‘손을 댄’
작가들 중 일부의 이름이다. 일본에서도 요시카와 에이지,
기타가타 겐조 등의 작가들이 삼국지로 유명하다. 요시카와 에이지는 미야모토 무사시로 유명한
일본의 소설가로, ‘39년에서 ‘40년에 걸쳐 일역판 삼국지를
발표하며, 조조의 북위 정통론에 입각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후
‘40년대 국내에도 삼국지가 계속되어 출간되는데, 놀랍게도
그 이름 중에 황순원과 김동리의 이름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삼국지는 20세기에 뒤늦게 한국에 전파된 것일까? 삼국지에서 유래한 각종 사자성어를
생각하면 아닐 터. 이미 조선 전기에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주간경향 기사 링크 클릭) 일본에서는 연의가 전래된 것이이보다 늦은 17세기경이며 역사서 삼국지는 그 이전에도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 위키피디아 日本における三国志の受容と流行 항목 링크 클릭 ). 물론 정사와 연의의 차이가 있을 것이며 전래시기도 양 쪽 모두 확실한 것은 아니다.
요는 이미 15세기경 삼국지는 이미 전파되었으며, 인의와 충을 핵심가치로 삼는
유교적 세계관과 맞물려 삼국지가 받아들여졌을 거라는 점이다. 삼국지의 고사와 사자성어는 교양이자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며, 심지어 한국에서는 한 때 수험생 논술의 필독서라고 불리었을 정도이니. (아니, 인과 충을 강조하며 주군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인간, 전쟁을 통해 가치를 실현시키려는 군상들의 이야기를 현대 민주공화국에서 학생들의 대학 입학시험의
텍스트로 삼았다고? ..그랬다. 물론 논술문제로 출제되는
것은 가치 중립적인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대입용 논술준비용 텍스트가 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부여가
된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의 주류 사회에서 삼국지는 늘 권장도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면에서 장정일의 삼국지는 황건의 난을 농민봉기로 평가하는 등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했다고 하니 반가운 마음이다. 그러고 보면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삼국지는 고우영 화백의 삼국지이다. 우리나라의
판소리 적벽가가 그랬다는 것처럼, 고우영의 삼국지도 죽고 죽이는 살육과 권력다툼의 무상함을 종종 드러내며
유머러스하면서도 인본주의적인 필치로 삼국지를 훌륭히 그려냈다. (요코야마 미쓰테루의 그것은 비교도 안되더라.)
삼국지는 ‘양서’인가?
삼국지가 이렇게까지 동아시아에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요행이 아니다. 삼국지는 이야기 얼개와 세 세력간의 힘의 균형, 수많은 매력적인 등장인물들, 권력암투, 인간의 본성을 꿰뚫어보는 지혜로움, 신출귀몰하는 책략 등 매력적인
‘이야기’의 요소를 너무도 잘 갖추고 있다. 위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낸 것은 그 원석을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수용방식에 대한 시각이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현대사회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부분을
본받을 가치로 뽑아낸다거나 사회적으로 청소년에게 권장할만하지는 않다고 보는데, 그러한 인식 없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권장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다.
삼국지에서 마키아벨리즘적인 지혜를 얻을
수도 있고, 경쟁사회에서 통용될만한 참고를 얻을 수도 있다. 기본
얼개인 세 세력간의 힘의 균형상황에서의 술수들은 참고,활용할만한 지혜가 무궁무진하다. 게다가 그 안에 나오는 수많은 군상들의 일화나 고사 하나하나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저절로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윗사람에 대한 충성’, ‘대의를 위한 개인의 희생’ 등을 읽어서는 곤란하다. 하지만 우리의 사회적 맥락에서,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으로 ‘권장’되는
삼국지는 부작용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
특히, 청소년에게
삼국지를 권할 때는, 과연 어느 부분이 권할만한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금하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이렇게 받아들여지는 삼국지가
과연 어떤 층위에서 권장할만한 것인지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적어도 삼국지를 무비판적으로 읽는다면 민주적
가치보다는 미화된 봉건적 질서가 체화될 가능성이 있다. 아직도 군주를 위해 낡은 창 한 자루를 들고
적진으로 돌진하는 부하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삼국지는 좋은 이야기이지만,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 걱정스러운 것이다. 다행인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삼국지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위에 언급한 장정일의 삼국지도
그렇지만, 삼국지는 분명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롭게 재해석되고 변용 될만한 생명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게임으로, 영화로, 만화로
삼국지를 새롭게 쓸 때마다, 삼국지는 조금씩 다시 태어나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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