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0일 일요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사랑하자 좆밥들아.


서지 정보
제목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저자/역자
박민규
출판사
예담
출간일
2009..7.20
페이지
420p
판형
A5, 148*210mm
가격
12,800


*본문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책을 아직 안 읽은분은 주의*




세기를 대표하는 추녀

 순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아이돌과, 발라드 가수가 출연하는 무대를 보고 있는데카레를 먹으며 보고 있는데방청객들의 박수소리도 여전한데한결같은 MC에 늘 보던 무대인데어떤 예고도 없었는데느닷없이 요들송을 부르는 아저씨가 나와  
요로레이요 레이리요 레이요르리 
하는 기분이었다. ,뭐야카레가 식을 때까지 망연자실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처럼,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첫 만남이다. ‘가 백화점 주차관리 아르바이트를 시작 한 날 발견한 그녀세기를 대표하는엄청난 추녀였다. 박민규는 이 소설에서 누가 봐도 충격을 받을 만큼 못생긴 여자와의 사랑을 다룬다. 작가의 말에서 밝히기를, 꿈같던 신혼시절 아내가 내가 만일 굉장히 못생겼더라도 이렇게 사랑할 수 있느냐고 물었던 것이 이 소설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추한 외모를 사랑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은 근원적 질문인 동시에 유치해질 수도 있는 질문일 터이다 .특히 이것을 주요 제재로 소설을 풀어나가려 한다면 굉장히 막막할 듯 하다. (나 자신을 포함한) 주위 현실을 둘러볼 때, 외모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어떠한가? 입으로는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은 많이 하지만 분명히 외모의 미추美醜는 모두가 지니고 들이대는 잣대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엄청나게 못생긴 여인이 겪는 아픔을 실감나게 표현한다. 접근하는 남자는 게임에서 진 벌로 벌칙을 수행하는 자일 뿐이고, 늘 그 뒤에 킥킥대는 무리가 있다. 같은 여자들 사이에서도 못생긴 여자는 일종의 계급적 차별을 겪는다. 감수성 예민한 추녀에게 이 세상은 상처만 줄 뿐이다. 못생긴 여자는 남자같이 쾌활하거나 스스로를 망가뜨려 웃음을 주는 재담꾼이 아닌 다음에야 늘 시야 밖으로 밀려난다. 아예 없는 사람 취급을 받거나,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

 책 표지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라는 그림인데, 몇 명의 소녀들 사이에 놀랄 만큼 못 생긴 추녀가 서있다. (주인공과 사랑하는 사이인 다소곳한 여주인공이라고 하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청초한 미녀의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책을 읽는 도중 수시로 이 표지의 추녀에게서 도움을 얻었는데, 그만큼 나도 외모 판타지에 경도되어 있다는 뜻일 게다. ) 이 표지는 원본 그림을 수정하여 추녀만 밝게 처리하고 나머지 부분을 조금 어둡게 해놓았는데, 전체적으로 이 책의 소재를 훌륭하게 보여주는 표지이다. 예쁜, 또는 보통인 여자들 사이에 선 추녀.


그와 그녀와 요한

 ‘는 슈퍼스타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특출 나게 잘생긴 미남으로, 배우가 되고자 하는 꿈을 이루려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지만 정작 가계에 보탬은 안 되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보잘것없는 어머니는 억척스럽게 집안을 먹여 살리며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했다. 그러나 우연한 기회에 스타로 가는 길을 잡고 유명해진 아버지는 결국 가정을 버리고 떠난다. ‘가 미추에 초연한 채 그녀를 사랑 할 수 있었던 데는 아마도 이런 가정환경도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는 왠지 모르게 그녀를 보는 순간부터 그녀가 마음에 걸렸고, 그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타자로부터의 호의에 익숙지 않은 그녀가 마음을 여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그렇게 둘은 가까워진다. ('그'와 '그녀'는 작중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두 인물의 사이에 있는 인물은 요한인데, 어떻게 보면 요한이야말로 이 소설의 주인공일지도 모른다. 열아홉의 재수생 신분인 의 가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고 그녀가 연결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요한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거의 요한의 입을 빌어 발화된다. 자유분방한 생활방식, 숨기고 있는 어두운 부분, 입만 열면 나오는 신랄하면서도 통쾌한 대사 등, 요한은 작가의 페르소나이자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 있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는 훼이크다 좆밥들아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그 특출난 구성인데, 요약하자면 액자 속의 액자 구성이다. ‘는 흥신소에 그녀의 행방을 의뢰해 그녀를 찾으며 소설을 통해 둘의 과거 이야기를 추억하고, 소설의 절정에서 왜 그가 그녀와 헤어져 그녀를 찾아야 했는지가 밝혀지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애틋한 둘의 해피엔딩으로 소설이 끝난다. 그리고 또 한번의 반전이 나오는데, 정말 뒤통수를 강타당한 듯한 충격이다. 앞의 모든 텍스트가 사실 요한이 쓴 소설이며, ‘는 사고로 인해 죽었던 것이다요한은 현재 자신의 아내가 된 그녀를 위해 이 소설을 썼다. 작가는 마지막에 요한, ‘그녀’, ‘버전의 세 결말을 담는데, 사실 이것은 열린 결말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요한과 그녀의 부분이 같은 내용이고 의 부분만 소설 내용이므로, 사실은 요한이 쓴 소설이라 보인다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이후에 가장 충격을 받은 반전이었는데, (물론 이것은 내가 작품을 읽은 순서 때문이다.) 앞의 텍스트가 모두 부정되면서 충격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점에서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이후 스토리와의 유기적 연결과 그 반전이 작중 스토리 내에서 가지는 의미, 그리고 감동이 배가된다는 점에서 박민규의 그것이 더 맘에 든다. 소설의 형식상의 새로운 시도나 실험들은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소설은 신선한 형식적 시도를 선보이면서도 그 시도의 효과가 시도나 실험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 내부에 흡수되어 서사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성공적인 시도이다.

 소설의 구성 외에도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일단 이 소설의 단락 구성인데, 소설 거의 전체가 평균 10줄 내외의 단락으로 구성된다. 문장 사이 자주 ‘…’가 등장하고, 때로 문장이 진행 중인데도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책 첫머리에서 도대체 왜 이 두 남녀가 이러는지 어리둥절한데 이상한 단락으로 눈이 오고 나무가 서있고 풍경묘사를 해대는데 답답하고 짜증이 날 수도 있는데, 책을 읽어나갈수록 점점 그 거슬림이 잊혀질 것이다. 화자의 내면과 사건 전개, 대화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질 듯 끊어지면서, 마치 1980년대 재수생이 된듯한 몰입감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신기한 점은, 분명 80년대를 배경으로 80년대만의 풍경들이 잔뜩 등장하고 시대적 고증에 충실한데도, 과거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없다는 것이다.


소재는 추녀, 주제는 사랑.

 이 소설은 사실 추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추녀를 통해 말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면 안돼요.’ 라는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얘기는, ‘사랑이다. 왜 우리는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고,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비웃고 짓밟으며, 자기보다 잘난 사람에게는 질투와 동경을 동시에 보내는가. 추한 외모에 보내는 경멸은 능력 없는 사람, 돈 없는 사람에게 보내는 무시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상대평가의 긴 잣대를 만들어 모든 것에 있어 사람을 줄 세우고 평가한다. 모든 분야에서 자본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경쟁논리에 따라 우리는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동경하는 것이다.

 요한의 입을 빌어 작가는 말한다진짜 특출 난 사람도, 진짜 못난 사람도, 1%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평범한, ‘좆밥들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들에게 뭐든 선택하고 가질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준다. ‘좆밥들이 끝없이 부러워하고 끝없이 일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부러워하기 시작하면 부끄러워하게 된다. 자기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1%를 보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 부끄러워한다. 열등감은 좆밥들의 특권이다. ‘추녀를 부끄러워하고 공격하는 건 대부분 추남들이다.’ 이 사회를 망치는건 독재자들이 아니라 그들을 지지해주는 그 좆밥들이다. 잘 살게 해주겠다고, 집 값을 올려주겠다고 하는 소리에, 상위 1%를 동경하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은 표를 던진다결국 이 사회를 둘러싼 이 부러움과 부끄러움이야말로 이 난장의 시작이자 끝인 것이다

 이 부러움과 부끄러움이란 것이야말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작가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사랑이란 연대와도 바꾸어 쓸 수 있는 말로 보이는데, 99%좆밥들끼리, 더 이상 서로를 부끄러워하고 1%를 부러워할게 아니라 서로를 받아들이고 사랑하자는 것이다. 우연히도 이 책을 집어 들고 읽은 게 대선 이후였는데, 그래서 부러움과 부끄러움이라는 작가의 진단이 더욱 예리하게 다가왔다. 예언서인가요 이거..

 책을 좋아한다면서 박민규를 처음 읽은 것은 변명 할 수 없는 내 게으름의 증명일 게다. 이 소설을 통해 그의 명성이 허명이 아닌 것을 알았다. 이 소설을 구성과 형식, 내용, 소재와 주제의식 등 많은 면에서 훌륭하며, 특히 그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소설의 내적인 완성도를 제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내공이 돋보였다. 무엇보다도 머릿 속에 맴돌던 많은 생각들은 부러움과 부끄러움이라는 한 마디로 깔끔히 정리해주는 작가의 외침이 좋았다. 그리고 그냥 감성적인 러브스토리로 봐도 손색 없는 소설이지만, 아무래도 이 사회를 관통하는 박민규의 예리함을 지나칠 독자는 없지 않을까. 아무튼 개인적으로 (출간일과 상관 없이) 올해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딱 맞는 소설이었다

2012년 12월 25일 화요일

< 7년의 밤 >, 이토록 엄청난.


서지 정보
제목
7년의 밤
저자/역자
정유정
출판사
은행나무
출간일
2011.03.23
페이지
523p
판형
A5, 148*210mm
가격
13,000





7년의 바화화하함이여~

팟캐스트 방송 빨간 책방 ‘1에서 천명관의 고래의 카운터 파트너로 선정된 책이 바로 정유정의 ‘7년의 밤이다. 대체 어느 정도이길래 영화판에서 불쑥 문학판으로 뛰어들어 전혀 새로운 형식의 찰진 스토리텔링을 보여준 고래와 함께 거론되는 걸까?

2007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세계 청소년 문학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정유정은 거꾸로 해도 정유정 ‘7년의 밤을 통해 고도로 직조된 이야기를 그야말로 숨 돌릴 틈 없이 쏟아낸다. 가상의 공간인 S시와 세령댐은 실제 한반도 어딘가에 있을 법한 공간감을 뽐내고,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캐릭터 역시 각자의 인생의 궤적과 합치되며 자연스럽다. 특히 인물의 과거사를 통해 현재 인물의 성격을 에둘러 설명하는데, 구질구질하지 않은 생활감이 설득력을 더한다. 2군을 전전하다 은퇴한 야구선수, 술집 작부 밑에서 자라며 생활력과 근성을 가지게 된 여자, 대지주의 아들로 비뚤게 자란 치과의, ‘악어출신 소설가 지망 보안요원 등등.. 이들의 개인사가 드러날 때마다 독자는 현재 나타나는 인물들의 성격에 대해 수긍하게 된다.

이러한 치밀한 세계관이 이 작품이 가지는 장점 중의 하나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며 얼마나 많은 준비와 취재를 했을 지가 자연스레 느껴지는데, 작가의 말을 보면 검찰 수사관, 잠수교관, 토목시공기술사, 댐 운영관리원 등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뻔질나는 취재가 있었으리라. 그런 만큼 이 소설의 치밀함은 여러 방면으로 드러난다. 가장 중요한 핵심 축은 세령호라는 공간적 배경이며, 그 공간을 둘러싼 배경에 인물들이 와서 붙고, 그 인물들의 삶이 쌓아온 배경이 사건을 추동 하는 식이다. 작가가 어느 순서로 이야기를 써나갔을 지는 알 수 없으나, 완성된 소설의 구조는 세령호라는 구심점 주위를 (자의든 타의든) 맴도는 사건과 인물들의 흔적이다.


작가의 볼배합

아마 이 책의 독자들에게 사건의 발단을 물으면 제각기의 대답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세령댐 건설’, ‘오영제의 폭력’, ‘현수의 음주운전’, ‘은주의 닥달’, ‘은주의 30평 아파트를 향한 열망’, ‘현수의 시신 유기’, ‘오영제의 비정상적인 권력과 의지’, 어쩌면 마티즈의 야광해골까지도. 그만큼 이 소설의 사건과 요소들은 우연적인 전개에도 불구하고 유기적으로 맞물려있다. 한 인물의 어느 특성이 다른 인물이나 사건을 자극하고, 또 그 결과가 또 다른 자극을 야기하는 식이다

예를 들면, 이 사건에 말려들 수 밖에 없었던 승환의 경우다. 그는 악어’(시체 인양부)질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일을 도우며 자랐으며, 해난구조대를 전역하고 취미로 스쿠버 다이빙을 계속 한다는 배경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글을 쓰고 싶어하는 작가 지망생이라는 배경이 겹쳐진다. 그는 글을 쓰기 위해 1년 계약직으로 세령댐 보안요원으로 취직한다. 안개가 자욱이 끼는 인적 드문 호수에서 글쓰기의 돌파구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의 창작욕을 자극한 것은 세령댐으로 인해 세령호 밑바닥으로 수몰되어버린 마을이었다. 승환이라는 인물이 사건 시간에 그곳에 있기 위한 장치로 그의 잠수부 전력과 작가지망생이라는 요소가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도 대충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쿠버 다이빙에 대해 꽤 자세한 전문적 설명이 제시되며, 이후 서원도 배우게 된다사건에 필요한 배경을 그냥 붙여놓고 끌어다 쓰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자세하게 설명되고 재이용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 소설에 나오는 핵심 요소들이 맞물리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데, 그 요소들이 딱딱 맞아떨어지며 자연스럽게 진행되어가는데 대한 쾌감이 크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중독성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댐이나 잠수에 관한 전문적인 설명이 나오든, 등장인물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든 지루할 틈이 없다. 중요한 부분마다 시니컬한 블랙유머로 글이 구질구질하게 흘러가는걸 막는 필치가 또한 이 작품의 장점이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나오는 비유들이나 등장인물의 대사는 빵 터지진 않더라도 미소 짓게 만드는 재치가 있는데, 이는 독자가 너무 비극적인 감정이 되거나 들뜨지 않고 감정유지를 하며 이야기에 몰입하게 돕는다.


잘 직조된 이야기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현수가 사택을 둘러보러 왔다가 세령이를 치고 시신을 세령호에 유기한다.
오영제는 결국 현수가 범인인을 알고 복수극을 벌인다.
영제, 은주 등이 사망하고 현수가 죄를 뒤집어쓴다.
서원과 승환은 사건이 알려진 곳을 피해 떠돈다.
가는 곳마다 사건 내용과 서원이 살인범의 아들이라는 기사가 배달된다.
알고 보니 영제는 죽지 않았다.
영제는 현수의 사형 집행일에 맞추어 서원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운다.(7년 간)
그러나 이를 간파한 현수의 마지막 작전에 걸려 결국 잡히고 만다.

이 얼마나 김 빠지고 밋밋한가? 이렇게 최대한 간략하게 뼈대만 세워놓으면 너무도 재미 없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작가의 손을 거쳐 이 뼈대는 휘몰아치는 서사의 파도로 탈바꿈한다.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라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한 소설은 한 시도 지루할 틈이 없이 시종일관 흥미진진하다

일단 구성을 통해 현재이야기가 펼쳐지며, 승환의 실종과 함께 서원이 승환의 소설파일을 열어보는 것으로 본격적으로 7년 전 사건의 전개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를 통해 진실을 깨달은 서원이 바로 현재가 그 소설의 대단원이라는 것을 깨닫고 행동하며, 그것이 이야기의 결말을 여는 행위가 되는 구성이다

물론 상술한 이야기의 뼈대는 작중 차츰 차츰 밝혀지며, 나머지 부분은 등장인물들의 생동감 있는 이야기로 메워져 있다. 중반 이후까지 사건에 대해, 그리고 사건 이후 서원과 승환을 괴롭히던 정체불명의 사람에 대해 많은 부분이 의문인 채로 남는다. 그리고 인물에 대한 성격 형성과 함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의문들이 차츰 풀려가는 과정이 이어진다. 이야기는 사실상 액자식 구성에 가까운데, 사건에 대한 서술 대부분이 승환이 정리한 세령호 문서파일을 통해 서술되기 때문이다. 덕분에 승환이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사건 관련자들을 묘사한 것을 보며 승환이 범인이거나 어떤 큰 비밀을 쥐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의심을 품게 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 메타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

아무튼, 작가는 치밀한 취재와 인물 형성, 필체, 형식적인 구성 등 여러 면에서 세령호 사건을 남김없이 전 각도에서 빨대를 꽂아 알차게 흡입한다. 그 결과, 이렇게 탄탄한 소설이 탄생했다. 재미와 흡인력, 중독성 면에서 아마 한국 문학계에 길이 그 발자취를 남길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당연히?) 영화화가 된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이 매력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볼 수 있다는게 기대되는데, 제대로 영화화 하려면 꽤 힘들고 품도 들 텐데 잘 될까 하는 걱정이.


약간은 아쉬운 결말

훌륭한 작품인 만큼, 작은 단점이 더 아쉽게 느껴지는데, 결말의 오영제에 대한 역습 부분이 작품 전체의 톤에 비해 조금 미약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이미 소설 중후반 무렵이면 이미 독자는 오영제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 것이고, 그 이후, 즉 승환의 텍스트 바깥 현재의 서원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가 소설의 대단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부분이 현수가 마지막으로 준비한 반전이며, 이 소설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왠지 좀 김이 빠지는 느낌이다이 소설이 마지막까지 쌓아 올린 것에 비해, 대단원 부분은 좀 허무하다. 운동화는 중간 중간 등장하는 장치이지만 결정적인 한 수로 이용되기에 약한 느낌이며, 현수의 결정구가 되기에도 허전하다. 승환의 대응 역시 그렇고, 서원이 무턱대고 등대에 올라 뛰어내리려 한 것, 그리고 이후의 전개 역시 그렇다.

결말까지 오기 위해 치밀하게 직조한 이야기가, 결말 부분에서 급하게 대충 마무리 된다는 느낌은 나만 가지는 것일까? 굳이 눈 씻고 단점을 찾자면, 은주와 현수의 연애 시기에, 영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인데, 아무리 좋아하는 영화라도 그런 식으로 긴 대사를 외우고, 그걸 처음 만나는데 서로 대화로 주고 받는 사람이 있을까? 자연스럽고 리얼한 묘사가 장점인 소설에서 딱 한 번 눈에 거슬리는 장면이었다.

이야기가 훌륭한 만큼, 결말도 그에 걸맞을 만큼 더 훌륭하길 바라는 욕심인 것은 확실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 아버지의 묘비명을 적은 후 영정을 들고 차에서 내려 그를 향한 카메라 세례, 세상과 맞서는 서원의 모습은 가슴 찡한 명장면이다.


차기작을 기다리며

책 뒷 표지에는 박범신 소설가가 정유정을 괴물 같은 소설 아마존으로, 조용호 소설가가 작가의 에너지가 경이롭다고 평하고 있다. 그냥 공치사는 아니란걸,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빨간책방스태프가 (아니면 두 임자가?) 고래와 함께 이 소설을 택한 이유 역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알 수 있다. ‘고래가 토속적이고 차지다면, ‘7년의 밤은 현대적이고 단단하다. 개인적인 부분이지만, 이런 식으로 문학계의 중심에서 미스터리적 요소를 가진 소설들이 주류문단에 등장하고 호응을 얻는걸 보면 기쁘다.

한국 추리문학이 거의 사장된 상태니만큼, 이렇게 문단 주류에서 미스터리 요소를 적극 수용한 소설들이 나오는 게 반갑달까또한 노파심에 덧붙이자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 지루할 틈 없는 흥미진진함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작가가 공들여 형성한 인물들은, 현대사회 한국인의 그 어떤 부분을 대변한다. 사건의 크기에도 눌리지 않는 이 인물들의 생동감, 그리고 어떤 기로에서 이 인물들의 선택이, 이 작품이 문학이라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2012년 12월 19일 수요일

<미스터리의 계보>, 그 잔혹한 기록


서지 정보
제목
미스터리의 계보
저자/역자
마쓰모토 세이초 저/ 김욱 역
출판사
북스피어
출간일
2012.06.05
페이지
304p
판형
A5, 148*210mm
가격
12,000



세이초 월드

 마츠모토 세이초가 일본 미스터리계에서 차지하는 입지에 비교하면, 늦은 편이다.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 세이초의 계보를 잇는다고 평가 받는 이후 세대 작가들이 큰 인기를 얻은 지 몇 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세이초의 작품세계가 체계적으로 소개되는 셈이니

 이 프로젝트는 장르문학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북스피어와 (여담이지만 북스피어의 공식 블로그도 매우 재치 있게 꾸며져 있어 들러볼만하다.) 역사비평 출판사인 모비딕이 손잡고 세이초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출간하는 것이다. 그 동안 세이초의 작품은 몇 편이 단발적으로 번역된 게 전부이니, 미미여사의 팬 등 세이초의 이름만 들어왔던 한국의 미스터리 팬들에겐 축복과 다름 없는 작업이다. 두 출판사의 패기에 그저 감사할 밖에.

 세이초는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조로 추앙되며, 언급 했듯이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 등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는 현재의 인기작가들의 직계조상이나 다름 없다. 기발한 트릭에 천착하던 미스터리 문학계에서 범죄의 동기와 사회적 원인, 범죄에 이르는 심리 등을 강조하는 그의 작법은 혁명적인 변화였고, 그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가 된다. 단지 대중성을 획득한 것 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모순을 응시하는 그의 작업이 그의 평가를 더 끌어올렸으리라.


미스터리의 계보

 세이초는 41살에 늦깎이로 문단에 등장하여 이후 40년간 무려 1천편의 저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는 미스터리 장, 단편 뿐 아니라 논픽션 르포 등도 있다. ‘미스터리의 계보가 바로 그 르포집의 하나인데, ‘67년에서 ’68년에 걸쳐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한 르포의 모음집이다.

 그의 취재 기록은 냉정하다. 르포답게, 개인적인 감상은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서늘하게 사실만을 기술하는 태도가 매우 날카롭다. 객관적인 사실, 사건을 둘러싼 증언, 관련자들의 이야기, 신문기사, 법정 기록들을 두고 이외의 것은 날카롭게 도려낸 단순한 문체. 사건과 관련한 감정이입을 일부러 배제하는 이 문체가 일종의 소격효과를 가져오고, 독자는 이 냉혹할 정도로 객관적인 글에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기 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당시의 시대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렇게 세이초는 르포의 본령을 충실히 이행한다.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세이초는 전후 일본의 야만성, 아직도 전근대적인 전통의 불합리성,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 사법제도의 모순 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당연히 모든 범죄의 원인을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세이초는 객관적으로 재구성되는 인물의 행적, 사건 당시의 주변 상황, 시대적 배경, 등을 통해 당시 일본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범죄를 통해 인간을 이야기 한다. 이러한 취재가 그의 문학의 핵심이 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그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미스터리의 계보인가.

 ‘미스터리의 계보라는 제목이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의 제목을 그리 지은 이유는 무얼까?

 미스터리의 계보란 바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며, 동시에 그의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는 바로 이런 취재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그가 현실의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곧 그의 미스터리 소설에 드러나는 태도가 된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작가로서 그가 실제 사건을 취재한 결과로 인식하는 사회적 모순과 인간의 심리의 문제는 그가 소설을 통해 제기하고 싶은 문제의식과 직결된다.

 그는 미스터리의 계보를 통해 본인의 작가적인 문제의식이 이렇게 현실에 천착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을 게다. 그리고 그러므로 자신의 소설을 단지 소설로만 읽지 말고 그 안에 등장하는 모순들을 현실적 문제로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지고 싶은 게 아닐까?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

 이 소설의 세가지 에피소드는 전골을 먹는 여자’,  ‘두 사람의 진범’, 그리고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이다. 세 사건 모두 끔찍한 사건이지만, 세이초의 차갑고 간결한 필치가 그 잔혹성을 오히려 극명하게 드러내는 효과는 마지막 사건인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에서 극대화된다.

 ‘전골을 먹는 여자는 전후 복구가 덜 된 일본 사회에서 도시보다 더욱 궁핍한 산골 작은 마을에서 소외된 지능장애인에 의해 벌어진 인육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독자는 이를 통해 붕괴된 일본의 경제와 소외된 자들의 문제를 읽는다.

 ‘두 사람의 진범은 기녀 살인범으로 지목된 두 남자의 이야기인데, 특히 공판기록 등을 상세히 인용하면서 당시 일본 형법체계의 허술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은 이 책의 백미인데, 그 사건의 규모가 그렇고, 그 끔찍함이 그렇다. 그리고 담담하게 사실만을 기술하는 필치가 그 잔혹함을 오히려 부각시켜주는 지점에서 무엇보다 그렇다. 준비를 마친 청년이 할머니를 도끼로 살해하고 불 꺼진 동네를 한 집 한 집 돌며 벌인 광란의 살육행각이 아무런 감정의 고조 없이 차분하게 설명된다. 산탄총으로 가족을 죽이고 칼로 베고, 피가 튀고 뇌수가 터지는 현장이 그대로 기술된다.
소설이었다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했을 살육이다. 조용한 밤, 총소리를 이웃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든 채 차례로 죽음을 맞는다. 이 사건에서 드러나는 배경은 일본의 왜곡된 전통과 모럴이다. 야요이라는 개방적 성문화의 전통, 폐쇄적인 시골마을의 문화, 체계가 덜 잡힌 과도기적 사회제도…. 세이초는 이 사건을 복기하며 그 요상한 시대와 공간을 독자 앞에 그대로 보여준다.


세이초의 계보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은 활발히 활동중이고, 계속해서 새 작품을 투척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그들의 작품을 원작으로 선호하는 듯 하다. 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 원류에 있는 것이 마쓰모토 세이초이다. 그의 계보는 큰 흐름을 이루며 활발히 확장 중이다.

현재 북스피어와 모비딕의 세이초월드는 6권이 나와있고, 앞으로 40여권 이상 더 준비중이라고 한다. 기대 되지 않는가?

2012년 12월 17일 월요일

<사회생물학 대논쟁>, 석학들의 다이다이.


서지 정보
제목
사회생물학 대논쟁
저자/역자
최재천, 김세균, 김환석, 장대익 외
출판사
이음
출간일
2011.09.01
페이지
304p
판형
A5. 148*210mm
가격
16,000




이것은 밥그릇싸움인가?

양의사와 한의사, 의사와 약사, 택시업계와 버스업계, SKT KT… 

 그렇다. 이것은 자신이 소속된 학계의 밥그릇을 지키려는 양 학계의 지리멸렬한 이전투구이다!  세계 학계를 하나된 생물학계로 만들고 내 꿈이 이루어지는 학계를 건설하고 거기에 반인반신의 선조로 군림하려는 윌슨의 야욕은 곧 세계 각 학계의 반발을 불러온다. 젊은 생물학계에서는 윌슨을 비판하면서도 생물학의 주도권을 위해 각 학계를 돌며 도장깨기에 돌입한다. 하지만 명문 사회학 도장은 장로들을 소집해 집단자위권을 발동시킨다. 여기 극동의 땅에서 생물학계와 사회학계간의 인의 없는 살육전이 벌어지려 하고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걸 아시죠? ‘사회생물학 대논쟁은 윌슨의 통섭이 불러온 논란에 대해 국내 유수의 생물학자와 사회학자들이 벌이는 첨예하고도 지적인 토론의 결과물이다. 이 세미나는 주도권을 잡으려는 양 학계간의 경쟁이라기보다 소통을 통한 첫발이라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찰진 기획

 이 책은 윌슨의 통섭이 국내에 소개된 이래 국내 생물학계와 사회학계간에 벌어진 논쟁에 대한 종합정리서이다.
 사회학계에서는 통섭과 진화심리학의 논리가 생물학적 환원주의라며 반발하고, 생물학계에서는 그것은 생물학에 대한 오해이며 진화론의 최신 성과를 제대로 이해하면 생물학과 사회학간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지점이 있다고 반박한다.
 어쨌든, 통섭의 저자인 최재천 교수는 당연히 본인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이 대논쟁의 중심에 말려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지점에서 그는 당황하거나 피하지 않고 이를 계기로 학제간 활발한 공개토론을 기획하는 신의 한 수를 두었다.

 이미 <대담>으로 도정일교수와 인문학-생물학 간의 대화 경험이 있어서일까? 최재천 교수는 통섭이후의 담론을 둘러싼 학계간 세미나를 통한 대논쟁의 장을 준비한다. 그리하여 이 무대 위에 생물학, 사회학 양 분야의 거두 세 명씩이 등장하여 세개의 논점에 대한 논문을 한 편씩 발표한다.
최재천 교수가 막을 열고, 세 번의 전투가 이어지고, 김세균 정치학 교수가 막을 내린다. 이 얼마나 흥분되는 천하제일무도회인가?! (여담이지만 김세균 교수님은 희망버스에 참여했다가 무단침입으로 기소되었다가 올 여름 선고유예 판결을 받으셨다. 죄송스럽고, 고맙다. )

 아마도 세미나를 기획한 최재천교수님, 세미나에 참여한 교수님들, 그리고 세미나에 참석했던 양 학계의 학생들, 그리고 이 기획을 책으로 정리할 수 있었던 출판사 모두에게 아주 깨알같고 재미진 경험이었을 터이다책 서문에도 소개되는 블로그 (링크)에서 참석자의 흥분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책의 표지 디자인 칭찬을 넘길 수 없는데, 시각적으로 심플하면서도 예쁘고, 내용적으로도 책을 한 눈에 요약해 놓았다.


세 가지 질문

 이 대논쟁에서는 사회생물학이 불러온 논란에 대해 가장 큰 논점 세가지를 잡고 그에 대해 양 진영이 각각 논문을 발표한다. 논점은 다음과 같다.

논쟁 1
사회생물학은 환원주의인가?
사회학계
김환석
<생물학적 환원주의와 사회적 환원주의를 넘어서>
생물학계
장대익
<사회생물학과 진화론적 환원주의>
논쟁 2
생물학으로 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가?
사회학계
이정덕
<지식 대통합이라는 허망한 주장에 대하여 문화를 중심으로>
생물학계
전중환
<문화의 진화적 종합을 위하여>
논쟁 3
한국에서 사회생물학은 올바로 수용 됐는가?
사회학계
김동광
<한국의 통섭현상과 사회생물학>
생물학계
이병훈
<한국에서 사회생물학을 어떻게 받아들였나? – 도입과 과제>

 전문적인 세미나의 논문 발표를 정리한 내용이니만큼, 당연히 이 책은 읽기에 쉽지만은 않다. 일반 독자가 선뜻 이해하기 힘든 학술 용어나 이론 등이 자주 튀어나오고, 어떤 레퍼런스를 모를 때에는 이해가 어려운 부분도 많다. 하지만 작은 턱을 넘고 나면 큰 재미를 느낄 수 있기에, 진화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인터넷을 검색해 가면서라도 일독 해 보기를 추천한다. 아마 진화론 관련 책을 읽어온 독자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책의 내용은 출판사 서평에서 너무 잘 요역, 정리해 놓아서 따로 언급할 필요도 없다. 책을 읽은 감상은, ‘윌슨이 잘못 했네.’

 분명 사회생물학은 뒤늦게 등장 해 많은 부문에 대해 높은 설명을 제공하는 학문이었다. 분명 나는 사회생물학에 큰 매력을 느끼고, 지지하는 쪽이다. 그러나 아직 모든 것을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개인적으로 진화심리학 관련 서적을 꽤 보다가 요즘은 시들한데, 그건 설명은 그럴 듯 하지만 어쩐지 이현령비현령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회학계가 반발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세번째 논점에서 김동광 교수는 윌슨 정복자적 태도를 비판한다

 분명 사회생물학은 그동안 사회학/인문학계가 부족하던 부분을 채워줄 수 있지만, 그것이 곧바로 생물학이 모든 사회학을 대체할 수 있고, 이에 반하는 것은 사회학계의 기득권 지키기라는 매도로 이어지는 것은 윌슨의 잘못이라는 이야기다. 이 논쟁은 서로에 대한 첨예한 논쟁이기도 하면서, 오해를 풀고 서로 인정하고 협력하기 위한 훌륭한 첫 걸음이다.


흔치 않은 경험

이 책에 등장하는 유수의 학자들이 최신 연구 결과 등을 인용하며 간결하고도 명쾌하게 펼치는 주장들을 듣는 것은 일반독자로서도 큰 지적 즐거움이다. 또한 (지금은 시간이 조금 지났으나) 현재 학계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그 논점이 무엇인지, 또한 그런 논쟁은 어떤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고, 이에 대한 양 측의 주장을 듣는 것 또한 귀중한 기회이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이병훈 교수님의 글에서 사회생물학 관련 추천도서 목록을 듬뿍 얻을 수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특히 이러한 학계간의 논쟁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우리 문화에 흔치 않은 책 아닌가. 요즘은 인문학, 진화론에 대한 일반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인데, 이 책은 그런 일반 독자에게 충분히 권할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