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9일 수요일

<미스터리의 계보>, 그 잔혹한 기록


서지 정보
제목
미스터리의 계보
저자/역자
마쓰모토 세이초 저/ 김욱 역
출판사
북스피어
출간일
2012.06.05
페이지
304p
판형
A5, 148*210mm
가격
12,000



세이초 월드

 마츠모토 세이초가 일본 미스터리계에서 차지하는 입지에 비교하면, 늦은 편이다.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등 세이초의 계보를 잇는다고 평가 받는 이후 세대 작가들이 큰 인기를 얻은 지 몇 년 후에야 본격적으로 세이초의 작품세계가 체계적으로 소개되는 셈이니

 이 프로젝트는 장르문학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북스피어와 (여담이지만 북스피어의 공식 블로그도 매우 재치 있게 꾸며져 있어 들러볼만하다.) 역사비평 출판사인 모비딕이 손잡고 세이초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출간하는 것이다. 그 동안 세이초의 작품은 몇 편이 단발적으로 번역된 게 전부이니, 미미여사의 팬 등 세이초의 이름만 들어왔던 한국의 미스터리 팬들에겐 축복과 다름 없는 작업이다. 두 출판사의 패기에 그저 감사할 밖에.

 세이초는 일본의 사회파 추리소설의 시조로 추앙되며, 언급 했듯이 미야베 미유키나 히가시노 게이고 등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모으는 현재의 인기작가들의 직계조상이나 다름 없다. 기발한 트릭에 천착하던 미스터리 문학계에서 범죄의 동기와 사회적 원인, 범죄에 이르는 심리 등을 강조하는 그의 작법은 혁명적인 변화였고, 그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작가가 된다. 단지 대중성을 획득한 것 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모순을 응시하는 그의 작업이 그의 평가를 더 끌어올렸으리라.


미스터리의 계보

 세이초는 41살에 늦깎이로 문단에 등장하여 이후 40년간 무려 1천편의 저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는 미스터리 장, 단편 뿐 아니라 논픽션 르포 등도 있다. ‘미스터리의 계보가 바로 그 르포집의 하나인데, ‘67년에서 ’68년에 걸쳐 요미우리 신문에 연재한 르포의 모음집이다.

 그의 취재 기록은 냉정하다. 르포답게, 개인적인 감상은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서늘하게 사실만을 기술하는 태도가 매우 날카롭다. 객관적인 사실, 사건을 둘러싼 증언, 관련자들의 이야기, 신문기사, 법정 기록들을 두고 이외의 것은 날카롭게 도려낸 단순한 문체. 사건과 관련한 감정이입을 일부러 배제하는 이 문체가 일종의 소격효과를 가져오고, 독자는 이 냉혹할 정도로 객관적인 글에서 등장인물에 감정이입하기 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당시의 시대와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렇게 세이초는 르포의 본령을 충실히 이행한다.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세이초는 전후 일본의 야만성, 아직도 전근대적인 전통의 불합리성,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 사법제도의 모순 등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당연히 모든 범죄의 원인을 사회 탓으로 돌리는 것은 아니다. 세이초는 객관적으로 재구성되는 인물의 행적, 사건 당시의 주변 상황, 시대적 배경, 등을 통해 당시 일본의 현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범죄를 통해 인간을 이야기 한다. 이러한 취재가 그의 문학의 핵심이 되는 것이고, 이를 통해 그가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미스터리의 계보인가.

 ‘미스터리의 계보라는 제목이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의 제목을 그리 지은 이유는 무얼까?

 미스터리의 계보란 바로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며, 동시에 그의 미스터리 소설의 계보는 바로 이런 취재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그가 현실의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곧 그의 미스터리 소설에 드러나는 태도가 된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작가로서 그가 실제 사건을 취재한 결과로 인식하는 사회적 모순과 인간의 심리의 문제는 그가 소설을 통해 제기하고 싶은 문제의식과 직결된다.

 그는 미스터리의 계보를 통해 본인의 작가적인 문제의식이 이렇게 현실에 천착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었을 게다. 그리고 그러므로 자신의 소설을 단지 소설로만 읽지 말고 그 안에 등장하는 모순들을 현실적 문제로서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던지고 싶은 게 아닐까?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

 이 소설의 세가지 에피소드는 전골을 먹는 여자’,  ‘두 사람의 진범’, 그리고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이다. 세 사건 모두 끔찍한 사건이지만, 세이초의 차갑고 간결한 필치가 그 잔혹성을 오히려 극명하게 드러내는 효과는 마지막 사건인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에서 극대화된다.

 ‘전골을 먹는 여자는 전후 복구가 덜 된 일본 사회에서 도시보다 더욱 궁핍한 산골 작은 마을에서 소외된 지능장애인에 의해 벌어진 인육사건을 다룬다. 그리고 독자는 이를 통해 붕괴된 일본의 경제와 소외된 자들의 문제를 읽는다.

 ‘두 사람의 진범은 기녀 살인범으로 지목된 두 남자의 이야기인데, 특히 공판기록 등을 상세히 인용하면서 당시 일본 형법체계의 허술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어둠 속을 내달리는 엽총은 이 책의 백미인데, 그 사건의 규모가 그렇고, 그 끔찍함이 그렇다. 그리고 담담하게 사실만을 기술하는 필치가 그 잔혹함을 오히려 부각시켜주는 지점에서 무엇보다 그렇다. 준비를 마친 청년이 할머니를 도끼로 살해하고 불 꺼진 동네를 한 집 한 집 돌며 벌인 광란의 살육행각이 아무런 감정의 고조 없이 차분하게 설명된다. 산탄총으로 가족을 죽이고 칼로 베고, 피가 튀고 뇌수가 터지는 현장이 그대로 기술된다.
소설이었다면 오히려 비현실적이라고 했을 살육이다. 조용한 밤, 총소리를 이웃의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든 채 차례로 죽음을 맞는다. 이 사건에서 드러나는 배경은 일본의 왜곡된 전통과 모럴이다. 야요이라는 개방적 성문화의 전통, 폐쇄적인 시골마을의 문화, 체계가 덜 잡힌 과도기적 사회제도…. 세이초는 이 사건을 복기하며 그 요상한 시대와 공간을 독자 앞에 그대로 보여준다.


세이초의 계보

한국에서 인기 있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은 활발히 활동중이고, 계속해서 새 작품을 투척하고 있다. 영화계에서도 그들의 작품을 원작으로 선호하는 듯 하다. 이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 원류에 있는 것이 마쓰모토 세이초이다. 그의 계보는 큰 흐름을 이루며 활발히 확장 중이다.

현재 북스피어와 모비딕의 세이초월드는 6권이 나와있고, 앞으로 40여권 이상 더 준비중이라고 한다. 기대 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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